앙상블 PHASE로부터 2018년 봄에 위촉받았다. 당시 나는 훈련소에 가 있어서 이 사실을 뒤늦게 전달받은 기억이 난다. 이 편성은 곡 써보면 아시겠다만 난해한 편성이다. 애초에 쓸 수 있는 옵션 중에서 가.거.대.피.해.생 가운데 관악기를 빼서 관악기 의존증을 이겨내보고자 고른 조합인데 진짜 어려웠다. 서스테인이 가능한 악기는 해금 하나다. 상당히 헐빈한 이 공간을 어찌 메울까 고민했는데, 아직 어떤 명확한 해답은 못 찾아서 아쉽다. 곳곳에는 갖은 헛짓거리를 해서 메우려고도 해 봤는데 어떤 곳은 또 여백의 미랍시고 좀 비운 곳도 있다. 기타나 만돌린, 하프시코드같은 서양식 발현악기와는 전혀 다른 전통악기들의 아우라 자체를 취급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아직 덜 여물어서 그렇다.
     한 마디로 이 곡을 쓸 당시의 마인드를 정리해 본다면, "내가 생각한, 또는 겪은 국악의 깊은 텍스쳐와 아우라들을 본격적으로 객관화하여 관찰하며 재료를 탐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정리해서 완성된 곡으로 만들어 보자" 였던 것 같다. 국악기를 가까이 하며, 한국의 정악과 동양권의 민속음악들을 가까이하면서 느낀 음악적 텍스쳐를 음악의 형태로 정리하며 나의 음악적인 풀을 탐구함과 동시에 비 서양음악적 상황에서의 선적인, 헤테로포니적 화성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정리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  총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며, 맨 앞에는 짤막한 0번째 악장으로 명명된 삽입구가 들어가 있다.
          맨 앞에 엽기적이거나 이목을 잡아끄는 특수주법 배치는 아주 효과적이고 선동적이다.  해금의 드라이 한 고음역대와 강렬한 느낌의 화성을 가야금과 거문고에 살짝 배치하고 거문고 프렛을 긁는 특수 주법을 이용한 삽입구를 맨앞에 놓았다. 사실 소주병 따는 소리에서 아이디어 얻은 부분이다. 
     1악장은 술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말 그대로 술먹은 3인의 흐느적거리는 대화다. 최대한 관념적이고 즉흥적인 느낌이 돋보이도록 썼고, 이 악장 길이의 3배 가량의 스케치를 임의적으로 가위질해서 그나마 좀 음악적이도록 보이게 편집한 결과물이다. 실제로도 가장 빠르게 작곡된 악장이다.  종지되는지도 모르고 이 악장은 알게 모르게 끝난다. 
     2악장은 정경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막판에 아예 새로 쓴 악장인데, 그냥 악기의 맛을 살린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일부러 아무 계획없이 썼다. 가장 마지막 장면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5번 <전원> 의 첫머리 주제가 극히 변형되어 아주 잠시 인용됨. 
     3악장은 그냥 노래다. 5절로 이뤄진 노래고 처음에는 맥락을 알기 어렵다가, 갈수록 선율성이 조금씩 드러나며 마지막 5절에서는 세 악기가 다 유니즌으로 함께 노래부르며 끝난다. 선율성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해본 결과인데 좀 유치하긴 해도 개인적으로 이 악장이 싫지는 않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감각에 천착하는 방식을 나는 잠시 버리게 되고, 구체적 형식과 재료에 대한 탐구 그리고 나만의 기법적 토대를 찾기 위해 음악적인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
=============================

     In this piece, I tried to expreiment various textures deriving from plucked string instrument and wanted to make another textural stereotype of Korean traditional music which could be considered really dangerous attempt.  I also wanted to study about "Harmony" based on "heterophony" through this work. 
     Some part of this music depicts my gloomy days of youth bluntly. 

<Performance History>
​
 (Premiere)
      2018.Dec.27th
     Ilshin Hall, Seoul, South Korea
     ensemble PHASE 6th regular concert
     Gayageum: Na-Yeong Park
     Geomungo: Jeongmin Park
     Haegeum: Jeonghyeon 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