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교외로 드라이브를 떠났는데, 어느 곳에 잠시 내려서 뭔가를 먹다가 보니 옆에 위 그림과 같이 모든 부분을 폐품으로 만든 이름모를 사람 형상의 설치미술품이 놓여 있었다. 당시 내가 봤던 전신상은 사람의 표정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짐짓 기괴해 보이긴 했다. 개개의 폐품들은 거의 아무 연관이 없었고 같은 장소에서 수집되어 온 폐품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재질도 각기 달랐고 크기, 용도, 색깔, 표면의 질감 모두 다 다른 "쓰레기"들을 "억지로" 모아놓은 기괴한 형상은 그때 먹던 김밥의 맛보다 꽤 기억속에 오랫동안 남았던 것 같다. 이번 곡은 원래 사운드 인스톨 내지는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멀티미디어 퍼포먼스의 형태로 완성해 보려고 했던 곡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와 나의 게으름 혹은 다른 커미션 곡들의 난립(?) 때문에 미뤄지다가 두 번 정도 작곡의 완성이 무산되었고, 어느 날 2023년 3월에서야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CAMPground23 페스티벌의 한 코너를 담당할 짧은 곡을 위촉받게 되었다. 편성은 5인의 타악기 주자와 트럼펫 독주와 스테레오 샘플러이다. 대략 8분 정도 되는 곡이며, 최후의 단 한 개의 선율을 빼고서는 모두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소나타나 교향곡, 피아노 소품, 관현악곡 등에서 크고 작은 부분들을 떼어다 윗 문단에서 언급된 폐품 조각상처럼 딱히 큰 유기성 없이 곡 전체를 구성했다. 타악기를 이용하여 대부분의 음향들이 연주되기 때문에 인용된 곡의 원본에 비해 더욱 분절적인 느낌이 강하며, 통조림에 포장된 베토벤의 단편들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샘플러 전자음향과 사운드트랙은 200년도 전의 베토벤의 음악을 호박 속에 같힌 곤충 화석처럼 시간여행을 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사운드트랙 속에서는 각종 알림소리나 벨소리의 형태로 "캡쳐"된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이용되는 베토벤의 음악들이 단편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트럼펫은 다양한 뮤트와 함께 건조한 타악기의 음향들을 한 데 묶어주기도 하며, 뒤에서 받쳐주는 서포터의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솔로 악기로서 리딩(leading)을 담당한다. 폐품 조각상으로 비유하자면 접착제나 와이어, 도색용 페인트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얘기해 볼 수 있을 듯. 곡의 전반부 약 3~4분 정도는 제법 속도감있게 진행된다. 베토벤이 남긴 거의 수십여 곡에서 떼어 낸 다양한 크기의 조각들이 서로 달라붙어 한 음악처럼 진행되지만 한대 세게 치면 바스라질 것 같은 폐품 조각상처럼 묘한 절룩거림이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중반부는 갑자기 스피드가 느려지면서 단위시간 당 음악적 정보가 줄어든다. 중반부는 동음연타가 많고, 지속음이 많이 쓰인다. 동음연타를 하는 동안 음 한 개체의 소리가 제한된 폭 안에서 조금씩 변화하도록 곡이 쓰여졌다. 강한 동음연타를 여러 악기들이 번갈아가며 진행하는 중에 다양한 조합으로 겹쳐지는 부분도 있으며, 악기끼리 서로를 강한 펄스를 형성하며 부딪히거나, 악기를 진동시킨 후 작은 사물들을 악기에 갖다대어 약간의 왜곡을 더하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악기에 전동칫솔을 갖다대고 다양한 압력을 통해 배음구조와 음고를 계속 바꾸는 부분도 등장한다(이 상황에서도 베토벤의 곡들은 끊임없이 인용된다). 이 부분은 위에 첨부된 악보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는 피아노 소나타 31번의 피날레 악장의 서주 부분으로, 탄식의 노래가 등장하는 부분으로 들어가기 거의 직전의 부분이다. 저 부분에 한하여 베토벤이 자필로 운지번호를 기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손가락을 계속 바꾸어 연주하며 동음연타 속에서도 조금씩 사운드의 스펙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베토벤 자신이 고안한 것이다. 게다가 이보다 앞선 마디에 una corda가 지정되어 있으며, tutte le corde를 통해 페달을 떼라고 지시하고 있다. 손가락 번호와 페달을 이용해 동음연타 과정에서의 사운드 스펙을 계속 바꾸기 위한 고도의 작전이라 볼 수 있으며 이를 전자음악과 다양한 타악기 소리들의 조합으로 다시금 재현해 봤다. 중반부는 실로폰, 비브라폰, 마림바의 20초 가량 지속되는 급격한 분산화음 제시로 인해 중단되고 종반부로 곡은 치닫는다. 종반부의 처음은 고요함 속에 제시되는 사운드트랙으로 시작된다. 사운드트랙 속에서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9번 교향곡 4악장> 등이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들리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남은 부분들은 단 1개의 아이디어로만 진행된다. 베토벤의 교향곡 7번 2악장의 리듬 패턴인
"e_eee_e_" 가 트럼펫에 의해 제시되고, 점점 이 리듬꼴은 타악기에 의해 부쉬진다. 그렇다고 아주 복잡한 사운드 매스가 되는 것은 아니긴 하다. 한 박자 안에서 부쉬지는 것이 매우 심해지는 것이라 생각하면 될 듯 하다. 그리고 이 무질서도가 최대가 되면, 아주 짧은 코다가 제시되는데 그 코다에서 나오는 단편적 선율은 이 곡 속에서 유일하게 내가 직접 만든 재료이다. 사실 이 곡은 앞선 장황한 설명들이 표면적인 의도이지만 진짜 속에 숨겨진 의도는 따로 있다. 이 곡의 음악 내적 내용은 전무하다. 껍데기만 번지르르하며, 내용물은 이전에 만들어진 음악을 약간의 가공을 거친 레디 메이드의 형태로 정교하게 이어붙인 정도의 것일 뿐이다. 바로 이것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다. 음악 속에 소우주를 만들려 했던 많은 작곡가들의 의도는 새장에 갇힌 꿈일 뿐이다. 작곡가들은 박제되어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껍데기들만 잔뜩 이어붙여져서 내용은 건조되어 오간 데 없다. 이 모든 것을 단편적으로 나타내는 이 음악이야말로 개념주의적 음악인 것 같다. =========================
<Program Note>
One day, I left for a drive to the suburbs, and when I got off somewhere and ate something, there was an installation art in the shape of an unknown person, which made all parts of it into waste, as shown in the picture above. The full-body image I saw at that time looked strange. Individual waste products were almost unrelated and just only few of them would have been collected from the same place. The bizarre figure, which was a "forced" collection of "waste" with different materials and different sizes, usages, colors, and texture of the surface, seems to have remained in my memory for quite a while longer than the taste of therice roll I ate at that time. This piece was originally intended to be completed in the form of a sound installation or multimedia performance requiring many people. But due to the corona crisis, projects were cancelled for several times and at last, I was about to compose with this concept for CAMPground 23 for 5 percussionists and solo trumpet + stereo sampler sounds. All parts of music came from Beethoven's various piano, orchestral works except single short melody located at the very last coda. Entire piece was composed without much organicity like the scrap sculpture mentioned in the above paragraph. Since most of the sounds are played using percussion instruments and electronic sounds, it feels more segmented than the original version of the quoted music, and it also feels like Beethoven's short passages and motives stuffed in cans. Sampler electronic sounds and soundtracks will help time travel Beethoven's 200 years old music like an insect fossil stuck in a amber. In the soundtrack, Beethoven's music, which is used in a slightly ridiculous form such as alarm sound or ring tones, appears. The trumpet binds the sounds of dry percussion instruments together with various mutes, and serves as a supporter supporting them from behind, and is in charge of leading as a solo instrument. To compare it to a sculpture of waste, it can be said to act as an glue, binder, or a paint. The speedy first half of the song lasts for about three to four minutes. I wanted to make music resembling a waste statue that would collapse if someone hit it hard. In the middle part, musical information per unit time decreases as the speed suddenly slows down. In the middle part, there are many percussive pulses with strong sync and continuous sounds are used frequently. The piece was written so that the sound of the instruments changes little by little within a limited range during homophonic play. There are various combinations of strong homophones that overlap each other, forming strong pulses, or adding some distortion by vibrating small objects to the instrument, and changing the overtone structure and pitch by using electric toothbrush's various pressures (even in this situation, Beethoven's songs are constantly quoted). I got this idea from the line of music shown above. This is the introductory part of the finale movement of the piano sonata 31. Beethoven wrote fingering numbers ordering to change fingers frequently on that part to make subtle change to sound's characteristic while playing the same key for a long period of time. Also, we can see una corda and tutte le corde mentioned and pianist should also use pedal in detail to change the resulting sound. It can be seen as a high-level operation to continue to change the sound specification in the same pitch hitting process using fingering and pedaling, and it was reproduced again with a combination of electronic music and various percussion's sounds. The middle part is interrupted by a rapid bunches of arpeggio lasting about 20 seconds by xylophone, vibraphone, and marimba. The beginning of the end starts with a soundtrack presented in silence. In the soundtrack, Beethoven's <Elise> and <Symphony No.9>'s finale movement appear in various forms of ring tones in daily life. And the rest of the work is composed with only one idea. The rhythm pattern of Beethoven's <Symphony No. 7>'s 2nd movement "e___e_e_e___e___"is presented by the trumpet solo, and gradually this rhythm is crushed by the percussion instrument. That doesn't mean it's a very complex sound mass. It just crushes inside the "one beat" unit. When this chaotic situation reaches its maximum, short melody suddenly appears from trumpet and percussions presents supportive chords shortly, but returns to the original rhythm pattern abruptly and the piece ends.
<Performance History>
2023.Mar. 17 (PREMIERE) Tampa, Florida, USA CAMPGround23 Festival Trumpet(Arda Cabaoğlu), Percussion(Kevin von Kampen ensemble), Sampler(Composer himself)
2023.Mar.20 Tampa, Florida, USA (College of St. Petersburg) Trumpet(Arda Cabaoğlu), Percussion(Kevin von Kampen ensemble), Sampler(Composer himself)
